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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에 다녀왔습니다. 해발 1950m. 제 발로 오른 가장 높은 곳이었을 겁니다. 항상 최소한의 운동량을 유지하며 살던, 그래서 근육이라곤 타고난 종아리알과 턱근육밖에 없던 제가 왕복 10시간 산행이라니요. “운동을 하려면 평생 해야하므로 아예 하지 않겠다“는 저의 평소 지론을 아시는 분들은 다 놀라실 겁니다. (앞으로 지하철 서대문역 근처에서 계단 하나하나에 소리 지르는 단발머리 여성을 보신다면 저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2m는 쌓였나봐요. ㅡㅡ;


  하산길에 바라본 한라산의 뒤태는 장엄했습니다만, 녹아내린 눈길에 엉덩방아를 찍었다가 미끄러졌는데 몸이 휙 돌아서 위를 보며 굴러 떨어지던 순간엔 ‘아, 이렇게 황천길로 직행하는가’ 싶기도 했습니다. 
이 공포의 하산길은 관음사 코스였는데, 그 곳에 수직으로 뚫린 동굴이 하나 있더군요. ‘구린굴 굴빙고’라는 이름이 달려있던데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이라서 영화 <디센트>가 떠오르더군요. 컴컴한 동굴 속에서 탈출해야 하는 주인공이 눈이 퇴화한 '골룸'들과 싸우는 아주 소름끼치는 영화죠.

영화 <디센트>(2005)의 한 장면.



  덕분에 오늘은 동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동굴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동굴에 갇혀있으면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실험에 관한 겁니다.
 

  1989년 1월13일 27세의 스테파니아 폴리니라는 여성이 미국 뉴멕시코주의 ‘로스트 동굴(Lost Cave)’에서 고립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우주비행 상황에서의 여성들의 건강 변화를 예측하기 위한 실험에 참여한 것이었고, 이탈리아 과학자팀이 미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으로 밖에서 그녀의 생활을 지켜보고 있었죠. (폴리니를 관찰했던 과학자 몬탈비니는 스스로 동굴실험에 수차례 도전한 사람입니다. 동굴에서 홀로 가장 오래 보낸 기간이 무려 366일. 1년에 하루를 더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실험은 당시 신문에도 보도가 됐습니다. 경향신문 1989년 1월4일자에 <伊(이) 과학자 동굴생활 / 우주비행 모의실험위해> 라는 제목으로 실렸군요.

  한 이탈리아 여성과학자가 장기우주비행 모의실험을 위해 1월1일부터 5개월 동안 혼자 밀폐된 동굴생활을 할 것이라고. 


  이탈리아 안코나 소재 한 연구소의 연구원인 스테파니아 폴리니(27)라는 이 여인은 지난 1일 美(미)뉴멕시코 칼스버그 남동부에 있는 동굴에 들어갔는데 이 동굴에는 앞으로 5개월간 동굴생활을 위한 식량 및 물이 비축돼 있으며 그녀는 동굴생활 동안 컴퓨터를 통해서만 외부세계와 통신하게 된다는 것.

  이와 아울러 美(미)항공우주국(NASA)및 이탈리아 과학자 4명이 동굴 입구에 이동연구소를 설치, 컴퓨터․뇌파측정기․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태양광선이 없을 때의 수면 및 기상패턴․뼈구조 등 그녀의 상태를 관찰할 예정. 5개월이란 기간은 화성까지의 우주비행에 해당한다고.

미 칼스버그 뉴멕시코주 AP



  
기사와 달리 폴리니의 직업이 과학자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린 10명의 용기있는 과학자들>(래술라 덴디․멜 보링/출판사 다른)이라는 책에 따르면 그녀의 직업은 실내 건축가였고, NASA의 훈련과정을 통과한 유도 유단자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동굴생활 동안 좋아하는 요리를 해먹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직업에 걸맞게 종이 창문과 달, 커튼을 만들어 동굴 내부를 꾸몄고, 틈틈이 운동도 했다네요.

 
 그러나 뭔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졸음이 오는 시간이 늦춰지고, 하루는 24시간을 넘어 28시간, 42시간까지 길어졌습니다. 아침 6~9시에 일어나던 그녀가 몇 주 뒤엔 정오 언저리에, 몇 주 후에는 저녁 8시에 일어나게 되죠. 어떨 땐 30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았고, 시간의 길이에 대한 감각도 변해갑니다. 


  긴 시간을 짧게 느끼다보니 낮이 길어지고 끼니를 먹는 간격도 벌어졌죠. 50kg이었던 그녀의 체중은 실험이 끝날 무렵 10kg 남짓 줄었습니다. 더불어 생리가 멈추었고, 백혈구와 항바이러스성 단백질 인터페론은 급증했으며 칼슘과 미네랄 부족으로 척추에 무리가 왔습니다.

  감정적 변화도 문제였습니다. 1시간 전에 한 일과 1달 전에 한 일이 헷갈릴 정도의 기억력 감퇴. 그리고 웃다가도 갑자기 화를 내는 식으로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131일간 동굴 속에 살았습니다. 실험이 끝난 뒤에도 생리는 8개월간 멈췄고, 집중력 장애가 여전했으며 심장과 혈압리듬도 몇 달 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비슷한 실험에 참여했던 여성 중에는 울음이 멈추지 않거나 실험 이후 자살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폴리니와 비슷한 시기에 20일 가량 짧게 동굴실험에 참가했던 32세의 동굴 탐험가도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했습니다. 개인적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하는데, 아마도 빛과 연관된 호르몬 분비 변화의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밤이나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는 일명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가 적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세로토닌 부족은 우울증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24시간 주기 생체시계.


  인간의 생체시계는 흔히 24시간으로 표현합니다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성인의 경우 평균적으로 24시간보다 약간 길게 나타나며, 인간의 생체주기는 23.5시간에서 24.65시간 사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답니다. 10대 때는 생체시계가 더 길다는 주장도 있고, 여성의 경우에는 약 28일 안팎의 다른 생체주기도 있습니다.  

  어쨌건 폴리니의 동굴생활은 생물의 생체시계가 빛의 영향을 받는다는 걸 보여주는 예가 될 듯합니다. 야근하는 날 새벽 5시에 잠자리에 들다보니 어두운 커튼을 달까 고민했었는데, 유사 동굴생활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집니다. 드라마 <트릭> 극장판에 나오듯 창문은 없지만 밝은 밀폐공간이라면 괜찮으려나요?

창문 빼고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인형의 집?

  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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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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