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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라울란트의 <호르몬은 왜>빌리 골드버그·마크 레이너의 <남자는 왜 젖꼭지가 있을까?> 두 권의 호르몬 관련 책에 대해 극과 극의 서평을 썼더랬습니다. 사실 호르몬에 관한 책은 가볍게 화장실에서 한장씩만 읽어도 일상에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에서 시차 적응을 위해 깊은 잠을 자고 싶다면 멜라토닌을 미리 사간다던지, 우울할 땐 호르몬 탓도 해본다던지 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너무 가볍다보면 다소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한쪽 책의 유머코드가 저와 잘 맞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실은 두 권을 연달아 읽었기 때문에 더 불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한 법인가 봅니다.

프로네시스. 정수정 옮김. 1만2000원


 
지금 나는 우울하다. 맛있는 아침잠을 빼앗아간 코르티솔 씨, 그리고 밤사이 나를 떠나버린 세로토닌 씨 때문이다. 하지만 곧 행복해질 것이다. 이 글을 마치는 순간 도파민 씨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의 정체는 호르몬이다. ‘희로애락애오욕’의 배후엔 내 핏속에서 릴레이 경주를 하는 호르몬들이 있다.

막 사랑에 빠진 사람에겐 페닐에틸아민이 넘친다. 이 호르몬의 성분은 스피드나 엑스터시 같은 마약의 주성분인 암페타민 계열이다. 그래서 마약에 취한 환각상태처럼 둥둥 떠다니게 된다. 페닐에틸아민이 식욕을 억제해주기 때문에 연인 앞에서는 평소보다 적게 먹기도 한다. 사랑도 일종의 스트레스여서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가 늘어난다. 그래서 연인을 만나면 얼굴은 화끈거리고 온몸에 열이 나면서도 집중력이 강해진다. 또다른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도 분비되어 아침엔 잠을 설치고 만드는 음식마다 짜다.



연애 초기의 남녀는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비슷해지기 때문에 싸우지 않는다. 함께 있으면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행복감과 성욕을 느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바람기가 동하기도 있다. 첫 눈에 반했을 때 과다분비됐던 페닐에틸아민은 3~5년이 지나면 정상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신 결속력과 친밀감을 주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분비되어 페닐에틸아민 금단증상과 싸운다.

남녀는 주로 자신과 다른 타입의 사람에게 끌리게 되는데 이것은 MHC(주요조직 적합 유전자 복합체)라는 면역체계 단백질 때문이다.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며칠간 입은 티셔츠의 냄새를 맡게한 경우 놀랍게도 MHC 유전자가 자신과 다른 남성의 것을 좋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의 유전인자가 다를수록 자식의 면역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유전자적 본능일 수 있다. 그러나 여자들은 하룻밤을 불태우고 싶은 남자로는 자신과 유전자가 다른 사람을, 오래 사귀고 싶은 사람으로는 자신과 유전인자가 비슷한 사람을 선택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부부는 닮는다고들 하는데, 닮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화학을 전공한 저자는 “임신 후엔 왜 후각이 달라지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던 일 때문에 호르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약리학연구소에서 화학자로 일하는 등 오랜 경험을 거쳐 그 질문의 답(“호르몬 변화 때문”)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모든 행동과 감정이 단순한 분자식으로 제한될 수는 없다고 충고한다. 몸과 외부자극의 상호작용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므로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행동을 호르몬만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호르몬에 대한 이해만으로 인간의 감정에 관한 쏠쏠한 상식이 쑥 늘어나는 느낌이다. 이제 우울증 치료제인 세로토닌을 얻기 위해 햇볕을 쪼이면서 통밀빵과 우유를 먹어야겠다. 겨드랑이 냄새를 인중에 묻히는 호르몬 실험들이 생각나 살짝 찜찜하긴 하지만.



랜덤하우스. 이한음 옮김. 9800원


 
살짝 민망한 이 궁금증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배와 등을 구별해 셔츠를 뒤집어 입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했던 친구는 “그럼 배꼽은 뭐하라는 거냐”는 나의 질문에 무너졌다. 남성의 유두는 초기배아단계의 흔적이다. 남성 성염색체가 활동을 시작하는 것은 배아 6주부터이며 그 전까지는 여성과 똑같은 발달단계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음식·신체·성(性) 등 다양한 의학적 궁금증을 해결해주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러나 머릿속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보다 겨드랑이를 긁어 웃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듯하다. 뉴욕의 응급 내과의사 골드버그는 의학드라마 자문을 구하러 찾아온 방송작가 레이너의 독특한 정신세계에 감동해 함께 책을 썼는데 중간중간 등장하는 둘의 메신저 대화는 농담과 동문서답으로 범벅이 되곤 한다.

정자를 먹으면 살이 찌는가, 팬티의 종류가 남성 생식능력에 영향을 미치는가 등 굳이 입 밖에 내어 물어보기 힘든 주제들이 많다. 그러나 상당수의 답변은 매우 간단하거나 유머로 얼버무려져 있다. 예를 들어 인공감미료가 두통을 일으키는가의 질문을 다루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면서 대신 확실하게 두통을 유발하는 원인들만 제시한다. 아이의 수학숙제를 함께 풀 때, 일요일 아침마다 상품광고전화가 걸려올 때 등등이란다.

그나마 돋보이는 것은 의사인 골드버그의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인기 의학드라마 ‘ER’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저자가 일하던 병원에서 탄생했다. 옷걸이를 갖고 놀다가 그 끝을 목 깊숙이 쑤셔넣은 아기가 응급실에 실려왔다. 실제로는 핀셋으로 간단히 해결했지만 드라마에선 아기 목에서 피가 쏟아지고 긴급한 수술로 이어지는 사건으로 그려졌다.

미국에서 2005년 출간돼 25주 만에 100만부가 팔렸다. 의학지식백과보다는 의학 화장실 유머집에 가까우니 저자들의 바람처럼 변기 옆에 두고 심심풀이로 읽는 것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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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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