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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세련된 몸가짐과 적절한 외국어 실력, 다양한 문화지식, 그리고 국제정치에 대한 해석과 진단, 동서양 고전에 대한 해박한 이해, 클래식 음악의 유명 피아니스트별, 지휘자별 특성과 구별법 등등? 이런 교양인과 시간을 보내면 주워듣고 배울 것이 많아 재미있다. 세상이 교양인으로 가득 차면 평화가 넘쳐날 것 같은데 실상을 별로 그렇지 못하다. 점잖은 교양인들이 음풍을 논하는 음악 사이트, 각종 마니아 사이트, 스포츠 토론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살벌하다. 심한 경우 옆에 곡괭이라도 있으면 들고나와 때릴 기세이다. ‘세계 10대 피아니스트’에 누가 들어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엄청난 독설과 조롱으로 다툰다. 이런 싸움은 마징가와 태권브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를 따지는 정도의 어이없는 열정이다. 지식의 과시, 상대적 우월함을 위한 교양에는 항상 이런 위험이 상존한다. 그래서 필자는 세상 평화의 관점으로 교양의 기준을 조금 다르게, 솔직히 말하자면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의 생각에 기대어 말해본다.

 

러셀에 따르면 교양 교육의 올바른 목표는 평생 즐길 수 있는 소일거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한다. 보통의 인간이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가난과 멸시, 사회적 불의도 있지만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것은 무료함이다. 개별 인간의 됨됨이는 어려움에 처할 때도 드러나지만, 정말 그 바닥이 쉽게 드러나는 것은 무료할 때이다. 호환마마, 유령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료함이다. 필자 수준의 사람들은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여 여기저기 지인을 불러 술과 잡담으로 시간을 때울 궁리만 한다. 이건 있는 사람들도 별다르지 않다. 돈이나 명예로 볼 때 무엇 하나 부럽지 않을 연예인, 재벌가 자식들이 성추문이나 마약, 도박에 엮이는 이유는 교양의 부재, 다시 말하면 무료함을 이길 수 있는 ‘강건한 교양’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은퇴를 두 번 하고도 남을 정치인들이 다시금 현실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새로운 권세를 탐하려는 몸부림도 무료함을 이길 확실한 소일거리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타인의 영역에서 탈취하는 사회적 일탈 행동 대부분은 무료함을 이길 교양의 부재 때문이다.

 

무료함을 이길 수단으로서의 교양은 일단 혼자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동원되어야만 하는 경우, 많은 돈이 필요한 경우, 특정 시절이나 시간이 요구되는 교양은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 이런 입장은 미국의 자연주의 철학자 웬델 베리가 컴퓨터를 사지 않는 열 가지 이유와 유사하다. 좋은 취미나 교양은 그것을 유지하는데 이전보다 돈이 적게 들어야 하고,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야 하고, 보통 사람의 지적 능력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웃에게 그 즐거움을 쉽게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교양을 추구하는 과정이 기존의 인간관계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 식구들을 내팽개치고 나가서 몇 날 밤을 새우며 하는 과도하게 몰입된 게임, 낚시, 스포츠 활동은 이런 면에서 좋은 교양이 되긴 어렵다.

 

지금의 기술로 미래를 전망해 볼 때 과학은 러셀이 말한 교양의 기준에 가장 적합하며 확실한 수단이 될 것이다. 과학의 다양성, 분야별 난이도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에 잘만 고르면 평생 즐길 수 있는 좋은 소일거리로 만들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수제맥주 만들기는 생화학을 이해하고 즐기는 과학 교양의 좋은 예이다. 교양으로서 과학이 가지는 장점은 미래에 대한 예측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실익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문제는 첫 진입 장벽이 다소 높다는 점이다. 양자역학, 후성유전학을 교양 소일거리로 삼기에는 많은 기초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는 코딩을 과학 교양의 현실적, 실용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자신의 힘으로, 창조물을, 그것도 집에 앉아서 무료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과학 작업은 ‘코딩’이 유일하다. 운이 좋으면 그 창작물을 타인에게 무한정 제공할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을 다듬기에 코딩만 한 교양 활동은 없다. 자신의 소망이 아니라 행위 결과를 그대로 보여주는 코딩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확실한 방법이다.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정부 발표 하나로 고등어 값이 폭락한 사건은 우리 사회의 과학 교양 수준을 잘 보여준 예이다. 과학이 교양으로 쓰이지 못하고, 또한 색깔론, 진영논리와 같은 이념이 과학을 억압하는 한 4대강과 같은 사태는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학, 그중에서도 코딩을 새해의 교양으로 시도해 보길 권해본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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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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