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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태양 주위를 1년에 한 바퀴씩 돈다. 그런데 완전한 원을 그리면서 도는 것이 아니라 약간 찌그러진 타원궤도로 돌고 있다. 타원궤도를 돈다는 것은 초점이 두 개가 있다는 뜻이다. 그 초점 중 하나에 태양이 위치하고 있다. 당연히 지구가 태양에 가장 가까워질 때가 있을 것이다. 이때를 근일점이라고 한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원일점에 있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태양에 제일 가까울 때가 여름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겨울이다. 지구의 자전축이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수직에서 오른쪽으로 23.5도 정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근일점 근처에서 지구는 태양에 제일 가깝기 때문에 태양열을 더 많이 받을 것이다. 당연히 더 따뜻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근일점 근처에서 하루의 길이는 가장 짧아지게 된다. 태양열을 받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두 효과가 섞여서 작동을 해서 원일점일 때가 여름, 근일점일 때가 겨울이 된다.


천문학과 1학년 학생들에게 타원궤도의 한 초점에 태양이 위치해 있고 자전축이 그려진 지구가 근일점과 원일점에 위치한 그림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라는 시험문제를 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단 한 명도 정답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계절 변화에 대한 문제는 너무 상투적이어서 누구나 별 생각 없이 답을 외워서 알고 있는 문제이기도 한데 충격적인 결과였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지구를 그릴 때 북극을 위로 하지 않고 남극을 위쪽으로 배치했다는 것뿐이었다. 이에 따라서 자전축의 방향도 물론 달라졌다. 북반구가 아닌 남반구의 관점에서 그림을 그려서 제시했던 것이다. 그나마 위로를 삼은 것은 학생 한 명이 그림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질문을 한 것이었다. 



이미 상상했겠지만 그림을 이렇게 그려놓고 보면 (남반구에서는) 근일점일 때가 여름이고 원일점일 때가 겨울이 된다. 우리에게는 낯선 그림이지만 남반구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그림일 것이다. 내가 이 글의 첫머리에서 이야기한 내용은 오직 ‘북반구에서’라는 단서를 붙였을 때만 사실이 된다.


오리온 자리는 여러 가지로 특별한 별자리다. 1등성을 둘이나 거느리고 있고 나머지 별들 중에도 2등성이 여럿 있어서 눈에 잘 보인다. 오렌지색에서 붉은색 사이 어느 색으로 보이는 베텔기우스와 하얗게 빛나는 리겔, 이 두 1등성이 사각형의 한 꼭짓점을 지키면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사각형의 가운데 부분에는 오른쪽 위로부터 왼쪽 아래로 세 개의 별이 차례로 정렬되어 있다. 삼태성이다. 어린 시절 오리온 자리를 볼 때마다 남반구 하늘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설레곤 했었다. 


몇 년 전 뉴질랜드에 갈 기회가 있었다. 밤마다 내가 한 일은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상상해보시라. 남반구에서는 오리온 자리가 어떻게 다르게 보일는지. 늘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던 오리온 자리의 모습을 실제 하늘에서 처음 본 그날의 벅참과 떨림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순간 나는 1920년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어느 룸펜을 떠올렸다. 보잘것없고 가난한 작가인 주인공이 다방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거만을 떨면서 자신이 파리에 갔을 때의 무용담을 들려주고 있던 바로 그 장면. 남반구에서 본 오리온 자리 생각을 하니 내가 본 감격적인 장면을 다른 사람들에게 마구 떠들고 싶던 그 시절 그 마음이 짠하게 다시 피어오른다.


오리온 자리는 하늘의 적도상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정동에서 떠서 정서로 진다. 삼태성이 떠오를 때의 모습은 거의 수직으로 별 세 개가 서 있는 꼴이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 예쁘게 떠오르는 삼태성을 보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었다. 대학교 1학년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를 꼬셔서 삼태성을 보러 갔었다. 날씨가 흐려서 별이 보이지 않았다. 자주 있는 일이다. 나는 별을 보려면 며칠 밤을 투자해야 한다고 여자친구를 설득했다. (별을 보기 위한 지극히 정상적이고 정당한 제안 또는 핑계다.) 그녀는 내 꼬임에 넘어왔고 우리는 별을 기다리면서 며칠을 같이 보냈다. 다음날 날씨는 맑아졌지만 무척 추웠다. 담요도 없이 가방을 깔개 삼아 앉아서 밤하늘을 봤다. 


우리는 떠오르는 삼태성을 바라보면서 짧은 일상의 이야기와 삼태성을 바라보는 동안의 긴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서로에 대한 긴 이야기 그리고 다시 삼태성을 바라보는 짧은 침묵을 반복하면서 그 밤을 보냈다. 여심은 별 이야기에 약하다. 별을 보면 더 약해진다. 보잘것없는 내가 멋진 아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8할이 밤하늘의 별들 때문이다. 나는 그저 그것들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내 마음을 실어서 감미롭게 전해줬을 뿐이다. 떠오르는 삼태성을 보는 이벤트는 검증된 연애 이벤트 중 하나다. 더구나 공짜다. 겨울이 서러운 싱글들의 건투를 빈다.


이명현 |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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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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