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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한복판이다. 날씨도 스산하고 마음도 흔들리고 그리운 사람도 떠나가는 계절이다. 1등성이 없는 가을의 밤하늘도 다소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별을 헤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흐뭇한 구석이 많은 것이 가을의 별자리다. 가을밤이 한창 무르익을 시간이면 북극성의 동쪽으로 카시오페이아 자리가 높이 떠 있다. ‘M’자나 ‘W’자보다는 ‘3’자 모양에 가까운 모습이다. 카시오페이아 자리에서 북극성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면 세페우스 자리가 있다. 카시오페이아 자리의 동남쪽으로는 안드로메다 자리가 있고 페르세우스 자리가 이어진다. 그런데 세페우스는 에티오피아의 왕, 카시오페이아는 왕비, 안드로메다는 공주 그리고 페르세우스는 공주의 남편이다. 가을밤 하늘로 산책 나온 가족 별자리다.

에티오피아의 왕 세페우스는 아름다운 카시오페이아를 왕비로 맞이했다. 그런데 카시오페이아는 허영심 많고 사치가 도를 넘은 여자였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뽐내다 바다의 요정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다. 신의 노여움도 커졌고 백성들은 괴물 고래의 습격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할 수 없이 딸 안드로메다를 제물로 바쳐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안드로메다 자리의 형태는 안드로메다 공주가 배 위에 묶여 있는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안드로메다 공주가 괴물 고래의 먹이가 될 위기의 순간 페르세우스가 나타나 공주를 구하고 그들은 결혼을 하게 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그들은 이런저런 계기로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 문득 장인과 장모를 모시고 사랑하는 아내 안드로메다와 함께 처가살이를 하는 페르세우스의 결혼 생활 뒷이야기를 별자리 전설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으니 아마 밤하늘에서 가장 행복한 별자리일 것이다.

카시오페아 별자리 (출처 : 경향DB)


한참 전의 일이다. 미국에서 열린 학회에서 네덜란드 천문학자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느닷없이 여자친구를 자신의 와이프라고 소개했다. 여자친구는 화를 내면서 날뛰었다. 유학 시절 만난 그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살던 커플이었다. 내 친구가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국에 있는 연구소로 가게 되었는데 여자친구의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할 수 없이 그들은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우리는 야만적인 미국의 결혼과 가족 제도에 대해 성토하고 또 성토했다.

내 주변에도 전통적인 틀을 벗어난 형태의 가족을 유지하면서 사는 경우가 꽤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같이 살고 있는 아티스트 커플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냥 부부라고 소개를 하곤 한다. 번거로운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지인들도 많고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만 낳아서 키우는 지인들도 있다. 뜻이 맞는 동성끼리 모여서 사는 지인들도 제법 많다. 문제는 이렇듯 가족 또는 동반자들의 동거 형태가 전통적인 가족의 틀을 많이 벗어난 것이 현실인데 법 제도나 인식이 이런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에 따르는 불편과 고통과 차별은 고스란히 이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만다.

최근에 새정치민주연합의 진선미 의원이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녀 자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다. 실제로 같이 사는 구성원들에게도 현재의 법적 가족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현실적인 법적 요구를 반영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나아가서는 ‘가족’이라는 형태를 현실에 맞게 재편하는 역사적인 의미도 있을 것 같다. 생활공동체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모태가 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짧은 군대 생활을 마치고 해외유학을 앞둔 25년 전 이맘때쯤 나는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결혼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동거를 하자는 것이었다. 아내는 또 철없는 소리를 한다면서 내 말을 무시했다. 결혼제도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지만 그녀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에 결혼을 택했다. 아내가 그때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를 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랐을까 하고 진지하게 나와 토론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마흔다섯 살이나 되었을 무렵이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끼리 그냥 모여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새로운 가족의 시대를 꿈꾸며 오늘밤에는 세페우스 가족을 만나러 가야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밤하늘이야말로 각기 다른 별자리들이 모인 거대한 생활공동체가 아닌가. 가을밤, 그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러 별자리 여행을 떠나보자.


이명현 |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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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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